“중앙통제센터에서 했던 일 비슷한 걸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호버카를 타고 가던 도중에 재섭이 말했다. 승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꿈 깨요. 그런 걸 기대했다가는 실망만 할 겁니다. 지금은 그냥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고요.”
승대가 말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태식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당신 말이요. 이번에는 좀 성질대로 행동하지 마쇼!!”
태식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승대를 쳐다보았다. 승대는 태식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는 일구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일구는 대꾸하지 않았고 태연한
시선으로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 쳐다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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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호버카는 4-A판게아지역을 벗어났다 도로를 타고 가는
옆으로 거대하게 뻗어있는 대지가 펼쳐졌고 그 중심부분에 4구역의 새로운
판게아개발현장이 보였다.
“4-C판게아현장입니다. 별로 멀지는 않죠?”
병태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그들이 탄 호버카는 새로운 판게아의
내부로 진입했고 각종 산업장비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각 건물사이를 요리조리
헤치고 지나갔다. 규모면에서는 4-A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다.
“저......저기 아까 전에도 이야기 했다시피 저희는 기계장비나 롤린 이런 건
전혀 못 다루는데요.”
재섭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기계장비는 다루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시게 될 일은 근무
환경도 좋고 아주 편한 일입니다. 이전에 어떤 일을 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일이
편하지 않다면 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병태는 웃으며 말했다. 잠시 후 호버카는 장비들이 즐비한 건물들을 벗어나
비교적 한산한 구역 쪽으로 접어들었다.
“저깁니다.”
병태가 가리킨 곳은 3층 규모의 작은 건물이었다. 화사한 색상의 외관은
입구에서부터 보아왔던 둔중한 분위기의 건물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전해졌다.
“저기서 무슨 일을 하는 거죠?”
호버카에서 내린 승대가 건물을 둘러보며 말했다.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병태는 미소 지으며 네 사람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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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직원식당이었다. 험악하게 생긴 덩치 큰 남자가 웃으며 다가와
병태에게 악수를 청했다. 병태도 웃음으로 화답하며 악수를 했다.
“잘 계셨습니까? 양춘만씨.”
“예, 덕분에......”
춘만이라는 남자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병태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요즘 일하는 것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안드로이드문제가 어떻게든 빨리
해결되어야지 춘만씨가 좀 편해질 텐데. 안 그렇습니까?”
병태가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저희가 원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죠. 아! 그리고 이분들이 이번에 일하시게 될 분들입니다.”
병태는 춘만에게 네 사람을 차례로 소개했다. 춘만은 큼지막한 손을 내밀어
한명씩 차례로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기 판게아 직원식당을 총괄하고 있는 양춘만이라고
합니다.”
“이분이 맨손으로 지구에서 오셔서 제일 밑에서부터 부서 관리자까지
올라오신 분입니다. 대단하신 분이예요.”
병태는 춘만을 추켜세우듯 말했다. 춘만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닙니다. 병태씨가 여기에 저를 소개시켜주지 않았다면 전 아직도 자리를
못 잡았을 겁니다.”
“양춘만씨가 다 노력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건데요. 막말로 안드로이드들이
판치던 시절부터 일해서 관리자까지 오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두 사람은 칭찬의 릴레이를 거듭하듯 서로 추켜세우며 웃고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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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같은 놈이야.”
태식이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며 중얼거렸다.
“예? 쓰레기라니요?”
“아까 양춘만.... 저 인간 눈빛 못 봤어? 완전 쓰레기야.”
태식이 말했다. 그때 옆에 있던 승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요? 뭘 쓰레기라는 겁니까?”
“당신한테 이야기 한 거 아니니까 신경 꺼요.”
태식이 말했다.
“좀 적당히 하쇼. 사람이 그렇게 모든 걸 삐뚤게 생각해서야
되겠습니까?”
승대가 말했다. 그때 탈의실 문이 ‘쾅’하고 열렸다. 문 앞에는 춘만이 서
있었다. 춘만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네 사람을 자로 가늠하듯 노려보았다.
“좋아, 내가 상사니까 그냥 반말 할게. 괜찮겠지? 불만 있으면 지금
이야기하고.” 춘만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그리고 따라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뒤를 따라 나갔다.
거대한 규모에 비해 주방시설들은 열악했다. 일하고 있는 직원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어땠는지 알아? 여기에 모두 안드로이드가
있었어. 그때는 모든 게 착착 진행되었지. 터치할 것도 없었고 말이야. 완벽한
하모니 같았지.”
춘만은 과거의 영광을 그리는 사람처럼 환희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얼굴에는 또다시 그늘이 졌다. 그는 우울한 얼굴로 네 사람을
돌아보았다.
“내가 너희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 묵묵하게 기계처럼 맡은바 충실히
일하는 것. 네 사람이 마치 한 사람처럼 정확히 일하는 것. 그것뿐이야.”
춘만은 그릇이 잔뜩 쌓인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핼쑥한 표정의
직원들이 그릇을 씻고 세척기 안에 넣고 있었다. 그때 춘만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 그따위로 밖에 못해? 어!! 기계보다 못한 놈들!! 똑바로 하란
말이야!!”
춘만은 실내가 떠나갈듯이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이 할일이 저거다. 최소한 저 굼벵이 같은 놈들보다는 잘 할 것이라
믿는다.”
춘만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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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식은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이마에 땀이 뚝뚝 떨어져 눈앞을 가렸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식사시간이 시작되자 그릇들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똑바로 서 있으면 어디선가 춘만의 신경질적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주위는 혼돈 그 자체였다.
그들이 머무르게 된 숙소는 공동숙소였다. 이미 실내에는 수 십 명의
남자들이 방에 뒹굴면서 쉬고 있었다. 지저분한 숙소의 모습을 보고 그들은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완전히 속은 거 같은데요.”
재섭이 말했다.
“그래서 도망이라도 가겠다고? 다른 곳에는 뭐 일자리가 있는 줄
알아?”
승대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들 잘 들어! 달에서 돈 버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이 정도는 아주
약과란 말이야! 당신들 기술도 없잖아?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승대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방을 가지고 투덜거리며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재섭이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은 기분 나쁘게 해도 저 사람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판게아에 없어요.”
“일하겠다는 말입니까?”
“제 말은 우리에게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거예요.”
재섭은 태식의 가방까지 집어 들었다.
“당신도 돈이 필요하죠? 그러면 일단 버티는 데까지 해봐요. 정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재섭이 말했다. 태식은 재섭의 말처럼 자신에게 더 이상 선택권이 없다는 걸
알았다. 세 사람은 한참동안 밖에서 서성이다가 숙소로 들어갔다.
-계속-
